[평창 필견(必見) 스타 ②] 男 피겨 하뉴 '인생이 드라마'

2018-02-10 12:30:39.0
이미지'역대급'이란 표현에는 이론의 여지가 존재한다. 판단에 주관이 들어가 있고, 무엇보다 결과론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9일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치러질 종목 중에는 이론 여지 없이 '역대급'인 경기가 있다. 바로 남자 피겨 싱글 종목이다. 남녀를 통틀어 현재 세계 최고의 피겨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하뉴 유즈루(24·일본), 막강한 쿼드러플 점프를 무기로 남자 피겨계의 경쟁구도 자체를 통째로 뒤흔든 점프기계 네이선 첸(19·미국) 그리고 최강의 복병으로 꼽히는 베테랑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7·스페인)까지 역대 최강의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피겨 남자 싱글 종목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최대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16일에, 메달색을 결정할 프리스케이팅 연기가 17일에 치러지는데 연이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을 예약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단연 하뉴 유즈루다. 김연아가 여자 피겨 역사를 새로 쓴 선수라면 하뉴는 남자 피겨사를 새로 쓴 대표적인 선수다. 소치 대회에서 하뉴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남자 피겨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각종 국제대회에서 최연소 기록을 수 없이 갈아치우며 세계 정상을 예약했던 하뉴는 기술적 완성도, 표현력은 물론 경기 외적인 요소까지 포함해 김연아 이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피겨계 슈퍼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닛칸스포츠' 등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지난 3일 하뉴가 피겨 단체전 출전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대서 특필했다. 지난 2014년 소치 대회부터 올림픽 종목으로 정식 채택된 피겨 단체전에서 하뉴를 앞세운 일본은 두터운 선수층을 무기로 유력한 금메달 후보국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훈련 도중 발목을 다친 이후 재활에만 매진해 온 하뉴는 오는 9일 평창올림픽 개막 당일에 시작되는 단체전 일정 참가를 아예 포기했다.

하뉴의 출전 포기로 일본은 종합순위와 메달 목표 자체도 하향 조정됐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고다이라 나오, 스키점프의 다카나시 사라 등 정도가 금메달권. 하뉴가 출전할 것으로 내다봤던 피겨 단체전은 물론 하뉴의 남자 싱글 목표도 현재는 은메달이 더 유력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그만큼 하뉴의 올림픽 2연패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은 단체전 메달을 포기하더라도 싱글 일정에 맞춰 하뉴의 컨디션을 최대로 끌어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캐나다에서 막바지 훈련 중인 하뉴는 입국 역시 16일부터 시작되는 싱글 종목 일정에 맞춰 평창을 찾는다.
이미지아사다 마오가 은퇴한 뒤 자칫 열기가 한풀 꺾이는 듯 했던 일본 피겨계는 대들보인 하뉴를 중심으로 여전히 쉴 새 없이 차세대 스타들을 양성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세계 무대에서 통하는 피겨 선수층을 유지해 온 일본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하뉴의 대회 2연패에 총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뉴의 올림픽 2연패를 자국이 사력을 다 해 지원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하뉴의 세계 제패가 곧 차세대 피겨 스타를 키울 원동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뉴는 지난해 11월 NHK트로피 대회를 앞두고 발목 부상을 입어 연말에 치러진 국가대표선발전에도 참가하지 못했지만 자국 평가위의 기준에 따라 그간 세계대회 성적을 바탕으로 평창출전권을 확보했다. 자칫 '특혜논란'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는 행보지만 하뉴는 일본 내에서도 '안티 없는' 스포츠 스타 중 하나로 꼽힌다. 자국에서 웬만한 연예인 이상의 인기를 자랑하는 하뉴는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됨에도 불구하고 '인성 좋은' 스포츠스타의 대명사로 통하는 선수다.

이런 배경에는 하뉴의 선수생활과 현역 경력은 물론 그의 인생 자체가 경기장 안팎에서 일본인들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드라마'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뉴의 출신지인 센다이는 일본 내에서 가장 두터운 피겨 선수층을 자랑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목에 건 아라카와 시즈카 역시 이 지역 출신이다. 센다이 지역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다. 하뉴는 훈련 중이던 아이스링크에서 급하게 대피하며 다행히 큰 피해를 면했지만 이후 지진 피해를 입은 고향을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한 스포츠 선수다.

무엇보다 2011년 큰 시련을 격은 이후 급속도로 성장세를 보인 하뉴의 연기력은 지난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하뉴가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소치 올림픽 이후 비교대상이 없는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던 하뉴는 2015년 12월에 치러진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남자 피겨 역사상 최고점인 330.43점(쇼트 112.72점/프리 223.20점)을 기록했고 이 점수는 현재까지 그 어떤 선수도 넘지 못한 '신의 경지'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하뉴는 소치 대회 이후에도 중요한 시기 마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렸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시상대 가장 윗자리에 오르는 '집념'을 보여 더 큰 지지를 확보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스캔들 하나 없이 오로지 훈련과 피겨에만 집중하는 하뉴의 인성과 인생은 그 자체로 일본내에서는 '희망'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하뉴가 이번 평창 무대에서도 대회 직전 입은 발목 부상을 딛고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할 경우 드라마에 화룡정점을 찍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욱이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인 하뉴의 도전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새롭게 등장한 경쟁자들 때문이다. 남자 피겨 종목에서 '비기'에 가까웠던 쿼드러플 점프(4회전 점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미국 국가대표 네이선 첸의 등장은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실제로 2018년 2월 초 현재 미국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지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은 부상으로 실전 무대에 나서지 못한 하뉴보다 첸의 금메달 가능성을 더 높게 내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지연기 중 한 번도 완벽하게 소화하기 힘든 것으로 평가돼 오던 쿼드러플 점프를 네이선 첸은 공식 경기에서 무려 5차례나 그것도 종류별로 완벽히 소화해 내는 무서운 기량을 선보여 지난해 한 해 동안 경이적인 속도로 세계 정상권에 진입했다. 4회전 점프를 무리해서 시도하지 않던 하뉴가 해당 점프 요소를 추가로 늘리며 부상에 시달리게 됐다는 해석이 적지 않은 이유 역시 네이선 첸의 존재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피겨 선수의 최전성기가 그리 길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평창올림픽 무대는 남자 피겨 역사에 남을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주인공과 강력한 라이벌의 존재만으로도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는 충분하지만 여기에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베테랑 등장인물까지 더해지면서 남자 피겨 종목은 무대가 막을 올리기 전부터 완벽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베테랑 선수가 '복병'으로 꼽히는 점도 흥미롭다. 해당 선수는 스페인 출신의 유럽 남자 피겨 최강자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유럽선수권대회 6연패를 석권한 페르난데스는 피겨 선수들이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지내는 것과 달리 20대 이후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여기에 하비에르 페르난데스는 하뉴나 네이선 첸과 비교해 가장 부담없이 올림픽 무대에 임한다는 이점아닌 이점까지 가지고 있다. 두 선수와 비교하면 각종 국제대회 경험치도 훨씬 높은데다 자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하뉴, 새롭게 세계 정상을 탈환해야 하는 네이선 첸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경기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기량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을 자랑하고 있어 당일 컨디션과 '멘탈'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피겨 종목인 만큼 베테랑의 극적인 반전 금메달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종목에서 여자가 아닌 남자 싱글 경기가 이토록 큰 주목을 받았던 적은 드물다. 남자 피겨의 전설로 통하는 러시아의 예브게니 플루첸코는 올 초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창올림픽 남자 피겨는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대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밝힌 바 있다. 전설이 예견한 전설. 피겨 남자 싱글 하뉴 유즈루의 경기가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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